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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사람들 16 삽당령-나무를 위해 건강한 숲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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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강 댓글 0건 조회 200,212회 작성일 18-08-28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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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줍은 듯 화려한 진달래 분홍빛이 옅어지고 있었다. 강릉에서 백두대간을 넘어 정선으로 길을 잇는 삽당령은 팍팍한 먼지길이었다.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됐다는 도로공사는 이제 아스팔트 포장을 남기고 있었다. 연신 살수차가 고개를 오르내리면 물을 뿌려 먼지를 달래보지만 효과는 별로 없어 보였다. 먼지는 4월의 막바지에 어울리지 않는 뜨거운 태양을 지원군 삼아 기승을 부렸다.

고개만 넘으면 보인다는 동부육종장이 보이지 않는다. 고개를 몇 번이나 오르내렸지만 간판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짙어만 가는 초록과 초록을 비집고 웃고 선 산 벚꽃 구경이 그나마 위안이 돼주었다. 몇 번이나 길을 물은 뒤에야 동부육종장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간판도 없는 전나무 숲길이었다. 30∼40년은 족히 되보이는 전나무 뒤로도 소나무와 참나무가 가지런히 열을 맞춰 손님을 반긴다.

칠이 벗겨진 작지 않은 건물에 다가가서야 간판을 볼 수 있었다. ‘임업연구원 서부시험장 왕산 시험림 관리소’. 듣던 바와 다른 이름이었다. “98년 8월 구조조정이 되면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동부육종장은 예전의 이름인 ‘임목육종연구소 동부육종장’을 줄여 부르는 이름이었죠.” 이름이 바뀐 것이야 그렇다고 치지만 직원도 이상붕(51) 소장과 여직원 한명이 전부였다. 우리나라 산림청 역사의 산 증인이라는 장석옥(52) 소장은 이미 그만 둔 뒤였다. “지난번 12월에 명예퇴직을 하셨어요. 제가 그 후임이죠. 장 소장을 만나려면 대기리로 가야 합니다. 거기 우리 채종장에서 공공근로 국유림 숲가꾸기 감독일을 하고 있거든요.”

우리나라 숲은 치산녹화 사업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이것은 절반의 성공일 뿐이다. 겉으로는 푸르르지만 숲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생물 종도 단조롭고 나무들도 볼품없기 때문이다. 임목육종사업이 중요한 것은 좋은 형질의 나무를 개발해 숲을 건강하게 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도입한 나무나 전국 각지에서 선발된 좋은 나무(수형목), 교잡을 통해 유전자를 개량한 나무들이라고 무조건 숲으로 내보낼 수는 없다. 수입어종인 베스를 방목해 토종 물고기들의 씨가 마른 팔당 댐의 우를 숲이라고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우를 피하기 위해 육종사업은 장대한 세월을 필요로 한다. “소나무 육종만 살펴볼까요. 교배를 해서 종자를 얻는 데만 2년 걸립니다. 파종해서 묘목을 얻는 데 3년, 검정시험을 거치기까지 한 세대를 기다려야 하고요.” 나무의 한 세대는 그 나무가 자라서 재목으로 쓰일 때까지를 말한다. 짧게는 20∼30년이고 길게는 그 두 배가 걸리기도 한다. 조기 검정으로 예측하기도 하지만 실패할 확률도 무시할 수 없다. 실패를 피하려면 그저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결과가 늦지요. 조직배양이나 유전자 공학 같은 것을 통하면 시험실에서 단 시일 내에 결과를 볼 수 있지요. 그러나 육종은 결과가 나오는 데 오래 걸리거든요.” 산림청 구조조정 때 가장 큰 파도를 맞았던 것도 결국 결과가 제대로 나와주지 않는 육종사업의 성격 때문이었다고 한다.

장 소장이 일하는 채종원은 삽당령을 다시 내려가 닭목재를 넘어서야 닿을 수 있었다. 육종학의 권위자였던 고 현신균 박사(85년 작고)가 69년 땀흘려 문을 연 채종원은 하늘 아래 큰터 대기리에서도 산골로 꼽히는 큰 용수골 끄트머리에 자리잡고 있었다. 장 소장은 산림청을 떠난 지 3개월 만인 지난 3월 다시 숲으로 돌아왔다. 집이 강릉이라는 장 소장은 아무래도 바다는 정이 안 든다고 말했다. 힘들어도 산에 오르면 마음이 편하다는 장 소장은 산림청 역사의 산 증인이다.

“전국 각지 안 가본 곳이 없고 산림청도 본청부터 국유림관리소까지 안 거친 곳이 없어요.” 채종원 능선에 오른 장 소장은 인근의 백두대간 봉우리들을 줄줄 외기 시작했다. “고루포기산이 저기고 저 희미한 봉우리가 대화실산이요. 저기 화란봉이 지난 96년 강릉 잠수함 사건 때 무장간첩들이 넘었던 산이고….” 어려서부터 지리 공부를 좋아한 탓에 근무지를 옮길 때마다 지역 공부를 열심히 해둔 덕분이라고 겸손해했다. “이게 미국 잣나무요. 스트로보 잣나무라고 하지요. 이게 우리 토종이고….”

나무들은 키가 작았다. “아 그거요. 채종을 할 때 나무 키가 너무 크면 힘들어요. 그래서 단간을 하지요. 생장점을 잘라주는 겁니다. 나무 키는 5m 정도가 적당해요. 가지는 가능한 많이 나도록 하지요. 씨앗을 많이 받기 위해서예요.”

이제는 계약직인 국유림 숲가꾸기 감독일을 하고 있지만 장 소장은 동부 육종장 사랑에 변함이 없다. 스트로보 잣나무 이외에도 독일 가문비 나무, 현사시, 라지에타 소나무 등 낯선 이름을 가진 나무들이 지역 적응성 검정시험을 받고 있다는 설명에 막힘이 없었다. “이곳이 강원도 동북부 지형의 표준이지요. 저 나무들은 지금 시험을 보고 있는 거예요. 강원도에서 잘 자라는가 살펴보는 거지요. 여기서 잘 자라는 나무들의 종자가 채취돼 묘목을 거친 뒤 식목일에 산에 옮겨 심는 거예요.”

동부육종장 소장을 하면서 못했던 일을 장 소장은 명예퇴직한 지금에서야 하고 있다. 산죽과 벌이는 한판 전쟁도 소장 재직 당시에는 예산이 없어 제대로 하지 못한 일이었다. “산죽 때문에 비료도 제대로 못 치고 종자를 잃어버리는 일도 숱했어요. 산죽 속으로 떨어지면 찾을 수가 없거든요.” 일단 산죽을 베어낸 뒤 한 2년 정도 제초제를 뿌리면 산죽과의 싸움에서는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IMF 숲가꾸기 공공근로 인원을 배정받은 기회에 장 소장과 이 소장은 여러 가지 계획을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임도를 개설하는 것도 계획 중 하나였다. 그러나 산죽도 대나무인지라 전기 제초기를 들이밀어도 날이 나가는 통에 일일이 낫으로 베고 있어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손에 물집까지 잡혀가면서 일하는 공공근로 참가자들을 더이상 어떻게 할 도리도 없었다. 그저 평생 해온 것처럼 인내로 시간과 싸우는 게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보인다.

“보람있는 일이요, 나무 심은 거지요. 지금도 삼척에 가면 다들 나무 주인 왔다고들 해요.” 국유림 관리소에 근무하면서 장 소장이 심은 나무는 350만그루에 달한다고 한다. 이제 우리의 숲은 그저 심는 것에서 더 발전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숲으로 동물들을 다시 부르기 위해서라도 숲에서는 건강한 나무들이 자라야 한다.

그저 튼튼한 목재를 원하던 사람들의 욕구도 많이 변했다. 그러나 ‘쓸모있는 더 좋은 나무’를 만드는 임목육종에 종사하는 이들은 자꾸만 밀려나고 있다. ‘시험림만큼은 제일’이라는 장 소장의 27년 노하우는 이제 고스란히 사라질 판이다. 박사 학위 논문을 앞두고 있는 이 소장도 언제 퇴출 딱지가 붙을지 모를 일이다. 그들이 산을 내려가고 나면 누가 남아 산을 생명의 어버이로 가꾸어 나갈 것인가.

출처: http://100mt.tistory.com/entry/백두대간사람들-16-삽당령-나무를-위해-건강한-숲을-위해 [<한겨레21> 신 백두대간 기행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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